AA 03: 권혜인, 김예지, 심지선

Published Date. 2024-12-05

AA 03: 권혜인, 김예지, 심지선
Ask the Artist 는 작가와 작업에 관해 묻고 답하는 형식의 간단하면서도 핵심적인 인터뷰 시리즈 입니다. 2024 서치라이트 《초분시간(s”m’h)》의 참여작가 권혜인, 김예지, 심지선의 AA 를 만나보세요.

Ask the Artist : Kwon Hye In

Q. 나에게 공예란?
A. ‘삶의 철학과 감정을 예술적으로 형상화한 일상 속의 특별한 물건’. 삶의 이야기를 담은 예술품이면서도 매일 반복되는 일상, 삶 자체 속에서 특별한 순간을 선사하는 힘을 지닌 예술로 승화하고자 하는 행위. 이로써 탄생한 공예품은, 저에겐 단순히 일용하는 물건 그 이상으로 삶의 철학과 이야기를 공유하고 감동을 전하는 사물이예요. 


Q. 기계로 만든 것이 아닌 수작업으로 만드는 것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해주실 수 있나요?
A. 행위를 통해 만들어진 사물이 제공하는 단순한 ‘기능적인 물건’에 그치지 않고 삶의 철학과 이야기를 공유하고 감동을 전하는 사물로써 가치가 있는 것 같아요. 수작업으로 만들어지는 시간 동안에 응축된 에너지와 인간의 삶을 엮는 이야기가 깃든 존재가 되어, 삶의 일부분으로서 감동을 전달하고 정서적 연결을 준다고 생각해요.

수작업으로 만드는 것의 가치는 그것이 단순히 물리적인 기능을 넘어서, 사람의 삶과 철학, 감정을 담고 있으며, 이는 일상의 반복 속에서도 특별함을 만들어내고, 소유자에게 깊은 감동과 의미를 전달하는 예술로 승화된다는 점에 있어요. 공예는 삶을 더욱 풍요롭고 의미 있게 만드는 창작물로, 그 자체로 예술적 가치, 정서적 연결, 그리고 지속 가능한 가치를 지니는 특별한 사물이에요.

Q. 작업의 모티브가 되는 신화나 전래가 있을까요?
A. 작품 속에 삶의 순환과 성장, 그리고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탐구의 과정을 담아냅니다. 그 과정 속에 우리의 지난 과거의 역사 속 이야기나 고대 신화 등에 내러티브적 요소들에 영감을 얻습니다.

대표작으로 소개한 작업의 경우로 예시를 들자면, 名譽_ Undefinable, 2021 작품은 인간에게 명예로움은 무엇일까?, ‘명예롭다는 것은 누가 정의할까?’라는 철학적인 물음에서 시작한 작품으로 그리스 로마 신화 속 클레오비스와 비톤 형제의 일화에서 동양의 인의 사상과 닮아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인간의 공통된 삶의 물음을 작품 속에 표현했습니다. 이와 같이 동서양 막론하고 나타나는 인간의 원초적인 삶의 질문들, 전해주는 지혜들을 통해 오늘날의 모습을 투영하여 작품 속에 조각으로 표현합니다. 

Q. 좋아하는 유물이 있으신가요? 어떤 유물을 가장 좋아하시나요.
A. 저는 기본적으로 상징성이 뚜렷한 장식적인 유물들을 좋아해요.  특히 고려 시대 유물들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금속공예, 도자공예 중 상형청자 등이요. 화려하게 장식된 기호와 상징들은 우리에게 속삭이는 듯 어떤 질문을 던지는 것 같고, 말해주고자 하는 것 같아요. 저에게 수수께끼처럼 궁금증을 유발하고, 그 안에서의 다양한 상상력과 창작의 욕망을 불러일으킵니다.  

Q. 박물관에서 볼 법 한 유물처럼 보이는 형태이지만 색이나 질감에 현대적 감각이 물들어 있는 것 같아요. 지금의 표현 방식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과정들이 있었나요? 
A. 저는 독특한 색상과 질감에 집중합니다. 옥빛의 청록색 유약에 반짝이는 크리스탈 문양은 고려청자의 색을 현대적으로 재해석 한 것이고, 무시유한 작품에 연마를 하고 은으로 코팅한 마감은 색과 형태, 빛의 미묘한 상호작용을 탐구한 것이죠.

다양한 빛을 발산하며 무한히 뻗어나가는 실루엣을 만들어 신성한 영적 공간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제 작품의 마감 방식은 도자기에서 느낄 수 없는 비물질적이고 가벼운 아이러니한 이미지를 창출해요. 이는 우리 삶의 복잡한 질문들의 무게감을 없애고, 동시대에 공감하는, 누구나 성장 과정에서 겪는 경험을 담고 있어요. 전통적인 개념과 관념적이며 권위적인 요소를 배제하여 관람자가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설계했죠. 비물질성과 경량감은 아이러니하게도 깊은 사유를 이끌어내는 전략적 표현입니다. 이러한 접근은 일상 속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고민과 질문들을 가벼운 방식으로 되새기게 하며, 더 넓은 공감의 장을 마련한다고 생각해요. 이 작품을 통해 관람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발견하고, 서로의 경험에 귀 기울일 수 있기를 바라는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도자공예는 흙, 유약은 자연의 산화물의 혼합, 결합으로 불 속의 화학변화와 소결 과정으로 색과 빛깔이 만들어지는 복잡한 연구와 공부가 필수불가결한 학문과 같은 영역으로 원하는 결과물을 얻기 위해 끊임없는 거듭된 테스트를 거쳐야 합니다. 저만의 색을 찾아가기 위해 지금까지도 계속된 실험을 거듭하며 작업을 하고 있어요. 표현방식에 따라 유약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다양한 결과치의 데이터를 축척해 나가는 중입니다. 흔히들 표현하길 신의 영역이라고 불리는 가마 소성은 요변 현상과 같은 원치 않았던 결과물을 만날 수도 있어서 가마를 때는 것에 있어서 굉장히 신중해야 하기도 하죠.

Ask the Artist : Kim Ye Ji

Q. 나에게 공예란?
A. 가장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네요. 저에게 공예는 작업의 이유인거 같아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3가지 요소를 모두 갖고 있거든요. ‘만들다’, ‘실용적이다’, ‘예쁘다’.

번외로 최근에 챗 GPT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제가 하는 일의 소속이 공예가 맞을까 궁금했거든요.공예라는 단어를 생각했을 때 같이 떠오르는 단어들은 ‘장인’, ‘전통’, ‘반복’ 등이었어요. 수세미로 실험적인 테스트를 하는 저는 얇고 넓은데 이 단어들로 정의를 해도 되는걸까? 하지만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공예의 범주가 크더라구요. 장인정신이 많이 거론되곤 하지만 탐구정신, 실험정신도 하나의 장인정신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의미에서 제가 공예에 대해 선입견을 갖고 있었단 생각이 드네요. ‘미적 가치가 더해진 실용적인 물건을 만드는 행위’. 공예는 생각보다 더 모던하고 현대적인 단어이네요.

Q. 기계로 만든 것이 아닌 수작업으로 만드는 것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해주실 수 있나요?
A. 기계로 만들면 완벽해요. 완벽하다는 의미를 또 다르게 해석하면 인간미가 없다, 영혼이 없다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네요. 수작업의 묘미는 사람의 손길이 묻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기계와 달리 실수도 하고 완벽하지 않거든요. 그런 부분에서 기계로 만든 것과 달리 작품에 감정이 담기기도 하고, 만든이와 같은 인간으로서의 동질감을 느끼는것 같기도 합니다. 

Q. 흔치 않은 소재인 수세미를 주로 사용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A. 처음엔 호기심이었고 그 다음엔 재미가 있었고 지금은 가능성이 보여서 계속 수세미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수세미를 실물로 본 그날이 아직도 선명히 기억나네요. 이집트 물건을 파는 코너에서 말로만 듣던 수세미를 처음 봤는데, 이게 어떻게 식물이지?라는 궁금증이 커서 집에 가는 길에 계속 수세미만 구글링했어요. 물에 닿았을 때, 건조됐을 때 달라지는 텍스쳐감이 재밌었고, 또 무엇보다 지속 가능한 소재라는 점도 너무 좋았어요.

저희는 크리에이터고 계속해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데, 한때는 예쁜 쓰레기만 만들게 되는 것을 아닐까라는 생각이 계속 있었거든요. 그렇다면 작업을 할 때 자연에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야 되고, 그 바탕이 되는 재료가 자연친화적인 소재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러한 생각들과 우연한 발견들이 연결되어서 본격적으로 수세미를 이용해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Q. 수세미의 특징점은 무엇인가요? 그러한 물성이 작품에 어떠한 형태로 드러나나요?
A. 물에 대한 유연함과 가벼움이요. 돌이나 나무처럼 물에 너무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아요. 말랐을 때의 텍스쳐는 거칠지만 물에 닿으면 부드러워지죠. 섬유질로 이루어져 부피에 비해 매우 가벼워 패브릭과 비슷한 느낌도 들어요. 이런 특성을 이용해 텍스타일처럼 작업하고 있어요. 저에겐 수세미가 원단이 되는 것이죠. 그렇다 보니 수세미만으로도 표현할 수 있는 범주가 넓고 다른 소재를 결합하여 사용하여 그 활용도를 더 높여나가고 있어요.

Ask the Artist : Sim Ji Sun

Q. 나에게 공예란?
A. 일상의 쉼 같은 것. 저는 항상 옆에 있는 자연과 사람들이 있는 일상으로부터 영감을 얻어요. 일상에 필요한 것을 만들어 사용하고, 작업이 쌓이게 되고 좋아하는 분들에게 선보이는 기회도 생기면서 작업에 더 매진하게 되었습니다. 

작업물을 만드는 과정은 제가 자라오면서 좋았던 기억이나, 재미있는 상상, 제 생각을 꺼내는, 저를 드러내는 행위이기도 하고, 반복적인 작업이 생각을 정리하고 다듬는 시간이 되기도 하여 어렵고 힘들기보다는 흥미롭고 즐거운 쉼을 주고 있습니다. 그 쉼으로 생긴 에너지는 다시 작업으로 이어져 새로운 창작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죠. 제 작업을 보시는 분들도 평범한 일상 속에 소소한 행복이나 편안한 쉼을 느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Q. 기계로 만든 것이 아닌 수작업으로 만드는 것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해주실 수 있나요?
A. 우선 재료가 특별하지 않아도 과정을 통해 특별해지는 것의 가치입니다. 아름다운 공예 작품은 대부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소재들이 많아요. 이 소재들로 작가의 생각이 반영되고 진심으로 작업하는 마음과 손길이 느껴지는 따뜻함으로 기계가 할 수 없는 가치 있는 아름다움을 만들어 냅니다.

또 다른 건 미래에도 쭉 이어질 수 있는 가치라 생각해요. 이 미래는 먼 훗날의 미래일 수도 바로 내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빠른 시간내에 수천수백개가 만들어지고 편리한 만큼 화학품을 많이 소비하는 공산품과 달리 공예는 무조건 많이 만들어 쌓아 두고 소비하는 것이 아닙니다. 화학품 대신 사람의 손과 시간과 정성을 소비해서 환경에 조금이라도 무해한 작업으로 만들어진 것들은 기계와는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해요.

이 모든게 곧 과정 그 자체의 아름다움이 되기도 하겠네요. 과정이 아름다운 건 시간과 정성, 진심을 담은 수작업에만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Q. 다양한 컬러보다 주로 모노톤, 특히 하얀색의 컬러를 사용하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A. 처음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하얀 실이 너무 아름다워서 이 소재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보자고 한 것이었어요. 다양한 패턴이나 짙은 색상은 평범한 소재를 화려하게 보여주는지는 몰라도 소재 본연의 매력이 드러나지는 않는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면, 모시, 광목, 캔버스 같은 원단의 하얗고 자연스러운 색을 주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Q. 면에서 선이 나오고 선에서 다시 면이 되어가는 과정이 인상적이에요. 안정적으로 순환되는 구조를 잡게 되신 배경이 궁금합니다.
A. 이 또한 소재에 집중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긴 순환이에요. 뜨개작업을 하다 원단을 쓰기 시작했는데, 실의 직조된 모습이 잘 보이는 두꺼운 캔버스가 마음에 들어 가방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캔버스같이 평범한 원단이 우리의 생각보다 얼마나 더 매력적인지 소개하고 싶어 원단으로 짜이기 전, ‘실’의 모습을 보여주자고 생각했어요. 소재감을 눈으로도 느낄 수 있도록 가장자리 올을 풀어 프린지 느낌을 내게 되었고, 안감을 드러내고 박음선을 길게 늘어뜨리는 등의 “의도된 미완성의 아름다움”을 모토로 작업했습니다. 

그때 올을 풀며 나온 짧은 실의 양이 많아지면서 버리지 않고 모아두었어요. 어느 정도 양이 모이니 나만의 귀하고, 특별한 의미를 지닌 소재가 되더라고요. 이 실을 어떻게 작업해 볼까 고민하다 그것들을 모아 재봉틀로 박아보기 시작했는데 수십 번 반복하니 점이 되고 수백 번 반복하니 면이 되더라고요. 자연스럽게 그 실들로 작업을 하게 되었고, 해당 작업 과정에서 나온 2차적인 부산물도 서로 이어지고 모이며 새로운 소재가 되어 가방, 오브제나 설치물 작업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Q. 섬유 소재를 사용하시는 데에 다양한 기법적 스터디를 하셨을 것 같아요. 그 과정에 대해 알려주실 수 있나요?
A. 섬유 소재 작업을 하면서 저는 소재 본연의 순수한 매력을 살리기 위해 다양한 실험과 연구를 시도해왔습니다. 작업 과정 자체가 결과만큼 중요했기에, 얇은 실을 떠서 굵은 실을 만들거나, 원단의 가장자리 올을 풀어 실 상태로 되돌리는 등 여러 방식으로 새로운 텍스처를 창조했습니다. 실이 뭉쳐 선이 되고, 선이 면이 되는 변화를 관찰하고 즐기는 것이 제 작업의 핵심입니다.

재밌는 발견을 하나 말씀드리자면, 원단에도 앞면과 뒷면 뿐만 아닌 측면이 있다는 거예요. 이를 표현하기 위해 캔버스 자투리를 층층이 쌓아 입체감을 만들어냈습니다. 또한 보통 감추는 실밥이나 시접을 드러내어 “의도된 미완성의 아름다움”이라는 제 모토를 실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접근은 덜 완성된 작업이 아니라, 소재의 매력을 돋보이게 하는 또 하나의 완성된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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